예산철이 돌아왔다. 강원 정치권이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담긴 지역 현안을 점검하고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추가 반영과 증액을 위해 총력전에 들어갔다. 특히 춘천~속초 철도와 강릉~제진 철도 등 강원도의 굵직한 SOC 사업에 상당한 예산이 반영됐다는 소식은 설악권에도 분명 반가운 신호다.
그러나 설악권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얼마를 확보했느냐”가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바꿀 것이냐”다.
철도가 들어오고 도로가 좋아진다고 지역의 미래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통망이 좋아질수록 설악권은 긴장해야 한다. 수도권에서 관광객이 더 빨리 들어오는 만큼, 더 빨리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설악산을 보고, 커피 한 잔 마신 뒤 저녁에는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간다면 설악권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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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망은 양날의 칼이다. 사람을 데려오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돈과 소비를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춘천~속초 철도, 강릉~제진 철도 같은 국가 SOC를 단순한 ‘교통사업’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속초·고성·양양·인제를 하나의 거대한 생활·관광·산업권으로 묶는 설악권 미래전략의 골격으로 활용해야 한다.
속초는 항만과 관광, 고성은 평화·해양·북방경제, 양양은 공항과 서핑·해양관광, 인제는 산림·생태·레저와 미래형 농업 등 각 지역이 가진 자산이 다르다. 문제는 이 좋은 자산들이 지금까지 서로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속초역에 내린 관광객이 고성으로 가고, 양양으로 이어지고, 인제의 산과 계곡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관광동선을 만들어야 한다. 철도역과 관광지를 잇는 교통체계도 필요하고, 지역화폐·관광패스·숙박·음식점·전통시장 등을 하나로 묶는 소비전략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설악권이 수도권의 관광 하청기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광객 숫자만 늘리고 외지 대기업의 숙박시설과 대형 체인점만 배불리는 개발이라면 지역의 미래라고 부르기 어렵다. 지역 주민이 투자하고, 지역 기업이 성장하고, 청년이 일자리를 얻고, 지역 상권에 돈이 남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산은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국비 몇백억, 몇천억을 확보했다는 보도자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예산이 10년 뒤 설악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설계도다.
지금 설악권에 필요한 것은 ‘우리 지역 예산을 더 가져오자’는 경쟁을 넘어 ‘이 예산으로 설악권 전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공동의 전략이다.
철도가 설악권에 들어오는 날, 수도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만을 기뻐해서는 안 된다. 그날부터 설악권은 수도권과 경쟁해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소비를 붙잡고, 청년의 삶을 붙잡아야 한다.
길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길 끝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다. 예산을 확보하는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확보한 예산으로 설악권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행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