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비가 올 때마다 도로가 막히고 토사가 쏟아지고 낙석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이제는 ‘재난에 얼마나 잘 대응했느냐’보다 ‘재난이 닥치기 전에 얼마나 위험을 줄였느냐’를 묻는 시대다.
강원지역에 이틀간 100㎜ 안팎의 비가 내리면서 도로에 나무가 쓰러지고 토사가 유출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1일 오후 4시까지 강원소방본부에 접수된 비 피해 관련 119 신고만 23건에 달했다. 특히 인제에서는 도로에 토사가 유출돼 안전조치가 이뤄졌고, 산지인 인제 기린에는 73.5㎜, 설악산에는 59㎜, 고성 거진 54㎜, 양양 47.5㎜의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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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 보면 ‘큰 피해는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악권 주민들에게는 이 숫자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산과 계곡, 급경사지, 해안도로가 촘촘하게 이어진 속초·고성·양양·인제는 비가 집중되면 작은 균열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철과 가을 행락철에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기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폭우’라고 여겼던 강한 비가 이제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 찾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도 달라져야 한다. 비가 내린 뒤 도로를 치우는 행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가 오기 전에 위험지역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행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설악권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동 대응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제의 산지에서 발생한 토사와 낙석이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를 거쳐 속초와 고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양양의 계곡과 하천도 집중호우 때는 언제든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행정구역의 경계가 재난의 경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지역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설악권 전체를 하나의 재난안전권역으로 보고 산사태 위험지역, 급경사지, 하천, 해안도로, 관광지, 등산로 등을 공동으로 점검하고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주민에게도 단순히 “비가 많이 오니 조심하라”는 문자 한 통을 보내는 것보다 어느 지역이 위험하고 어떤 도로를 피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번 비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재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고가 난 뒤가 아니라, 사고가 아직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험을 방치하는 순간이다.
설악권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가진 곳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만큼 자연의 힘도 크다. 관광객에게는 낭만적인 계곡과 산길이 주민에게는 위험한 급경사지가 될 수 있고, 평소에는 한적한 도로가 폭우 때는 고립을 부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행정의 진짜 실력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달려가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위험을 미리 찾아내고 고치는 데서 드러난다.
비는 언젠가 그친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경계까지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호우를 계기로 속초·고성·양양·인제가 ‘피해 복구’ 중심의 재난행정을 넘어 ‘위험 사전 제거’ 중심의 안전행정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주민의 생명과 관광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설마’라는 말이 가장 위험한 적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