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강원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출범

전우호 (woogongws@nate.com) | 기사입력 2026/03/20 [08:39]

[데스크칼럼] 강원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출범

전우호 | 입력 : 2026/03/20 [08:39]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오래된 말은 더 이상 미담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됐다.

 

최근 강원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 문을 열었다. 속초·양양·고성·인제, 이른바 설악권을 담당하는 이 기관은 학대 피해 아동 상담과 심리 치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인프라다. 그 자체로 지역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시기 들려온 비극적인 소식들은 우리를 다시 멈춰 세운다. 울산과 군산, 임실에서 이어진 생활고 기반의 가족 사망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놓쳐버린 ‘위기 신호’의 결과다. 이미 여러 차례 공공기관이 방문했고, 위기가 감지됐지만 끝내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금의 시스템은 ‘아이를 지키기 위한 체계’인가, 아니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체계’인가.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아동 보호는 여전히 사후 대응 중심이다. 학대가 확인되어야 개입하고, 신청이 있어야 지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아이의 생명은 그렇게 ‘조건부’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는 신고서에 기록되는 순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울산 사례에서 보듯, 위기가구로 분류되고도 지원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제도는 있었지만, 연결이 없었다. 방문은 있었지만, 개입은 부족했다. 무엇보다 “신청해야 지원받는다”는 구조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제도 밖에 머물게 만든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복지는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라, 찾아가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강원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출범은 그런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단순히 학대 대응 기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지역의 학교·경찰·복지기관과 촘촘히 연결된 ‘조기 발견 네트워크’로 작동해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순간, 공과금이 밀리는 순간, 보호자의 건강이 악화되는 순간—이 모든 신호가 하나의 데이터로 연결되고 즉각적인 개입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지역 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동네가 키운다’는 말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이웃의 관심, 학교의 관찰, 지역 공동체의 참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아이는 안전해진다. 공공기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의 변화다.

“문제가 발생했는가”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동의 생명은 사후 대응으로 지킬 수 없다. 한 번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기에 과잉 대응이 부족한 대응보다 낫다.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개입하는 것이 결국 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 비극들을 일회성 사건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를 바꾸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아이의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리고 그 책임은 특정 기관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눠 가져야 한다.

 

“한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이

더 이상 후회 속에서 되새기는 문장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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